"4시에 너를 만날거면 나는 3시부터 행복 해질거야" (어린왕자 中)
어제 아큐레이리의 밤거리를 쏘다니고 숙소에서는 날 밤 새듯 뒤적이며 보냈더니, 미처 정리 되지 못한 것들(things)이 뇌리의 서랍에서 엉켜 있는것 같았다.
'박 연미?'

유럽 소울 충만한 서점을 순례 하다 눈이 마주 쳤던 '박연미'라는 세글자 그리고 그녀의 얼굴로 가득찬 책 표지가 내 눈을 끌고 있었던 것이다. 이 먼곳에 웬지 슬퍼 보이는 그녀의 책 한권이 매대에서 뚜렷하고 꼿꼿하게 빛나고 있었는데, 막상 동족인 나는 그녀가 누구인지 모른채 얼버무르듯 물러 섰던 어제의 편린이 떠올랐던 것이다. 검색 해 봤다. 탈북소녀,고비사막을 건너 탈북하고 중국에서 인신매매 되고 그 과정에서 겪었던 '인권'의 짓밟힘을 딛고 이제는 유럽으로 유엔으로 탈북의 실상을 알리고 다닌다고 한다. 아 어떻하지 ? 나는 그 책을 집어 들고 왔어야 하나 하고 잠시 생각하고는 얼른 그 서랍을 닫고 이내 오늘 일정 점검으로 딴짓(?)을 한다 .
쥘베른의 소설"지구속 여행"이 있다. 80만년간 화산활동이 일어나고 이어진 빙하기에 그 활화산 위를 덮어버린 거대한 만년설 산 정상 아래에는 200m 깊이의 분화구가 숨어 있는데 작가는 이 곳을 지구 중심 속으로 들어가는 입구로 묘사 했다고 한다. 그 입구가 있는 곳이 바로 "스나이펠스네스 반도"에 있는 스나이펠스요쿨 국립공원이다 . 그러나 열흘간의 일정에서 이곳은 도저히 시간상 갈수 있는곳이 아니었기에 우린 어쩔수 없이 다음 기회를 위해 남겨 놓기로 했는데, 또다시 나는 오늘 출발에 앞서 가능 여부를 계산 하고 있는것이다 . 그런데 문제는 다른곳에서 시작 됐다. 이제 여행의 반환점을 찍었다는 것..........일행들의 마음은 "이제는 돌아가야 할 때"라는 귀가본능이 일어났던 모양이다 .
"그래요, 거긴 다음에 가기로 하고요, 가는길에 고래가 나타나는 마을 '달빅' 하고요, 전통가옥 박물관이 있는 '글뢰임바이에르'를 들러 보는건 어떨까 싶은데, 참고로 '달빅' 마을은 좀 돌아 가야 해서요. 아마 오늘 목적지인 보르가네스까지 도착하면 저녁이 될거 같아요 "
"칸님, 돌아간다면 혹시 보르가네스로 바로 갔으면 어떨까요? 내내 차를 타고 다녔더니 이젠 좀 쉬고 싶은데요, 고래투어도 별로 땡기지는 않고요 ㅋ"

산너머 남촌에는 누가 살길래~~ 저 외딴 집에는 누가 살길래 ~~ 가을바람이 이렇게 불어 오냐고 유행가도 흥얼거릴 만큼 이젠 낯설지 않은 곳이 되어 가고 있었다. 그런데 난 저 집에서 살게되면 얼마나 버틸수 있는걸까 ? 언젠가 정선 탄광에서 일주일간 봉사를 한 적이 있었다. 그때 마음 한켠에서는 집에 갈날을 손꼽으며 세고 있었는데 그래 가지고 무슨 동참이냐고 찔리는 타박도 하곤 했던 생각이 났다. 나그네는 나그네 일 뿐이다. "삶"으로 살아가는 이들의 그곳으로 들어 갈수 있다고 착각은 말아야 한다고 말이다 .

아쉬움이 컸던 스나이펠스네스로 가는 갈림길에서 레이캬비크로 방향을 돌리고 나서야 보르가네스 마을의 이정표가 보이기 시작 했다.
"아이슬란드는 아름다운 곳이 맞지만 용암지역과 활화산 같은건 자주 보고 싶지 않아요. 일본여행 패키지로 가면 한번쯤 보았던 것과 별로 다르지 않아서요. 매케한 유황냄새도 그렇고. 여행이 꼭 보고 싶은것만 볼수는 없지만 아름답고 예쁜곳은 좀더 많은 시간을 할애 했음 좋을것 같아요 "
맞는 말이었다. 일정을 짤때 가장 고민했던 부분이기도 하고. 보통 그곳에 간다면 반드시 가보아야 하는것은 ? 이런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곤 하는데 아이슬란드의 경우 인랜드와 용암, 화산 투어는 언제나 상위에 랭크되어 있는 이곳만의 "상품"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것도 정답은 아니어서 다녀오면 아주 좋았던 곳, 보통이었던 곳, 좀 그랬던 곳 이렇게 분류해서 다음 일정을 수립할때 참고 하곤 하지만 역시 기간과 루트의 절대적인 요소가 거의 모든 일정에 영향을 미치게 되는건 어쩔수 없는것 같다. 좀 더 기간을 늘리는게 좋았을 것 같다.

비가 내리고 있었다. 보르가네스 마을은 제법 구색이 갖춰진 레이캬비크 수도의 위성 도시 쯤 되는것 같았다. 듬성 듬성 지어진 집들이야 이곳의 특색이고 바닷가에 접하는 곳 부터 알록달록한 카페들과 샵들이 늘어서 있었는데 비가 오고 비수기라 그런지 썰렁 하기만 했다. 예약한 아파트에 여장을 풀었다. 노부부가 운영하는 게스트 하우스였는데 따듯하고 인정이 넘치는 분들이었다. 우린 2층 전용 룸을 사용 했고 화장실과 욕실은 공동으로 사용하는 구조였다. 다른 한쪽 방은 나중에야 알았지만 오스트리아서 온 가족이 사용하고 있었다.
"오늘밤 아이슬란드 음악을 즐길 수 있는 공연이나 뮤직 바가 있는지 알수 있을까요?" 노부부에게 부탁 해 보았더니 마치 제일인양 여기 저기 전화 해보고 서핑해보고 하면서 아주 자세히 알려 주었다. 그러나 결론은 이미 요일이 안맞고 날자가 안맞고 비가오는 비수기라 문을 닫은곳이 많다는 것......노부부가 나 보다 더 안타까워 하며 괜찮으냐고 토닥 거려 주었다. 나는 일행들이 쉬는 동안 차를 몰고 비가 오는 바닷가로 나가 보았다 . 바다 너머 저 멀리 레이캬 비크의 불빛들이 보이기 시작 했고 배를 만드는 조선소를 지나 바닷가에 차를 세우고 천천히 둘러 보았을때 예쁜 색으로 덧칠한 돌멩이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돌멩이마다 써 놓은 이름들 .... 누굴까 ... 어떤 사연이 있는걸까 ? 비가 와도 씻기지 않는걸로 보아 유화 물감을 사용한듯 한데 그 소박한 아이템이 보는이의 가슴에 평안함으로 빛나고 있었다 .

숙소로 돌아와 샤워실로 가려다 방금 씻고 나온 웬 소녀와 마주 쳤는데, 바로 앞방에 있는 오스트리아인 가족 일행이었다. 타올을 두른 모습이라 당황 했는데 오히려 소녀는 미소를 지으며 자연스럽게 방으로 들어 갔다. 이후 식사시간을 이용해서 그 가족들과 얘기 할 기회가 있었다 . 우리 처럼 링로드를 돌고 우리처럼 내일 공항으로 가는 일정이었다 . 아이슬란드 여행에서 보았던것과 좋았던 것을 이야기 했는데 내가 독일어를 모르니 주로 소녀와 영어로 소통하는 편이었다.

내일은 레이카비크에서 자유시간을 보내고 저녁에 공항으로 가야 한다. 첫날에 제대로 보지 못했던 레이캬비크에서의 새로운 모습을 기대 하며~~ 끝까지 오로라는 나타나지 않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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